← 강독

아이를 거두는 일에 대하여

작성: 주영택 · 2026-04-26

— 정약용 『목민심서』 애민편 자유(慈幼)를 다시 읽으며

들어가며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직전의 학교 급식실은 이상한 긴장감이 있다. 줄지어 들어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아이는 식판을 가득 채우고 어떤 아이는 거의 비운 채 자리에 앉는다. 누군가는 한 그릇을 다 비우고도 더 받으러 가고, 누군가는 절반쯤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풍경 자체는 평범하다. 그런데 가끔씩, 그 평범함 속에 묻혀 있는 한 장면에 시선이 멈출 때가 있다.

급식비 미납 명단이 붙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사라진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떤 아이는 자기 이름이 거기 있는 것을 매일 확인하며 점심을 먹어야 했고, 어떤 아이는 그 명단을 보지 않으려 일부러 시선을 돌리며 식판을 받았다. 밥을 먹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움이었던 시절이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왜 부잣집 아이까지 공짜로 먹여야 하느냐"는 질문은 매년 어딘가에서 반복된다. 그 질문은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어딘가 본질을 비껴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밥을 먹는 일 — 그것이 단순한 복지 항목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인가?

그 질문을 붙잡고 있다가, 200년 전에 같은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 사람을 다시 펼쳤다. 정약용이다. 그가 강진 유배지에서 18년간 다듬은 『목민심서(牧民心書)』, 그중에서도 애민편(愛民篇)의 두 번째 조 — 자유(慈幼). 어린이를 사랑하는 일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은 그 한 조각의 텍스트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1. 자유(慈幼)의 자리: 『목민심서』 애민편 6조

『목민심서』는 12편 72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네 번째인 애민편(愛民篇)은 백성을 사랑하는 일을 다루는데, 이게 사실상 조선판 사회복지 분류표다. 6개 조가 다음과 같이 배치되어 있다.

한자대상
1조 양로(養老)노인
2조 자유(慈幼)어린이
3조 진궁(振窮)환과고독(鰥寡孤獨)
4조 애상(哀喪)상을 당한 자
5조 관질(寬疾)병자·장애인
6조 구재(救災)재난 피해자

이 배치 자체가 정약용의 사상을 보여준다. 노인 다음에 곧바로 어린이가 온다. 그리고 그다음에 환과고독 —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 온다. 즉 정약용은 백성 중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자를 가장 먼저 정치의 대상으로 놓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정치(政)란 본질적으로 약한 자를 향해 작동하는 무엇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는, 그 약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자다.


2. "선왕의 큰 정사" — 자유는 시혜가 아니다

자유 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慈幼者, 先王之大政也. 歷代修之, 以爲令典. (자유자, 선왕지대정야. 역대수지, 이위영전.)

—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은 선왕의 큰 정사(大政)이다. 역대로 이를 닦아 법전(令典)으로 삼았다.

여기서 두 단어가 결정적이다. (대정)과 (영전).

대정(大政)이란 정치의 부수적 사안이 아니라 본령에 해당하는 일을 말한다. 즉 정약용은 자유를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 "정치가 정치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의 자리에 놓는다. 영전(令典)은 법전·제도라는 뜻이다. 자유는 군주의 개인적 미덕이나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법으로 못 박아 두어야 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 두 단어의 무게를 가볍게 읽으면 안 된다. 정약용은 어린이를 보살피는 일을 시혜()에서 제도()로 옮겨놓는다. 통치자의 마음에 따라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법으로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상은 지금 들어도 놀랍다. 무상급식을 "선의의 베풂"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보아야 한다는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 명제 — 그것을 정약용은 200년 전에 이미 정확히 짚어두었다.


3. 정약용의 구체성: 추상이 행정으로 번역되는 순간

『목민심서』가 동아시아 고전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추상적 도덕 원칙을 구체적 행정 절차로 번역해냈다는 것. 자유 조에서도 이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정약용은 흉년에 버려진 아이들(遺棄兒)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남긴다. 추려서 보면 대략 이런 구조다.

  • 흉년에 버려진 아이가 있으면, 관(官)이 거두어 길러야 한다.
  • 거두어 기르는 백성에게는 관에서 식량과 의복을 지급한다.
  • 그 아이가 자라면 거두어 기른 자의 자녀로 삼을 수 있게 한다.
  • 이 과정 전체를 법으로 정해 두어 흉년마다 반복할 수 있게 한다.

이게 18세기 초·중반 조선의 행정 매뉴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음미할 필요가 있다. "불쌍한 아이를 도와주라"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어떤 절차로 지원할 것인가까지 내려가 있다. 시스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사양서(specification)**다. 추상적 원칙(慈幼)을 실행 가능한 인터페이스(쌀 몇 되, 옷 몇 벌, 절차 몇 단계)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리고 이 구체성이야말로 자유를 단순한 도덕 격언과 구분짓는 결정적 지점이다.

凡有遺棄之兒, 養之者, 官給其糧.

— 무릇 버려진 아이가 있으면, 기르는 자에게 관이 그 식량을 지급한다.

이 한 문장에 이미 현대 아동수당의 원형이 들어 있다. 양육의 책임은 가족이 지되, 그 비용은 공동체가 분담한다 — 정확히 그 사상이다.


4. 사상의 뿌리: 환과고독과 측은지심

자유 조를 더 깊이 읽으려면, 그 뿌리에 닿아 있는 두 텍스트를 함께 봐야 한다.

환과고독개유소양(鰥寡孤獨皆有所養)

『예기』 「예운(禮運)」편의 대동(大同) 사상이다.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

— 노인은 여생을 편히 마치고, 장년은 쓰임을 얻고, 어린이는 자라나며,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장애인은 모두 부양받는다.

여기서 "어린이는 자라난다(幼有所長)"는 한 구절이 자유 조의 직접적 출처다. 이상사회(大同)의 정의에 어린이의 자라남이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한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 적어도 동아시아 고전 사상에서는 — 그 사회의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달려 있었다는 뜻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맹자의 측은지심이 있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다.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본 순간 누구의 마음에서나 일어나는 그 마음 —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 — 을 인간 본성의 증거로 들었다. 정약용의 자유 조는 사실상 그 마음을 제도로 번역한 것이다. 측은지심이 개인의 윤리에서 멈추지 않고 공적 시스템으로 외화(外化)될 때, 그것이 바로 자유다.

이 흐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측은지심(맹자, 윤리) → 환과고독개유소양(예기, 이상) → 자유(정약용, 제도)

추상에서 구체로, 마음에서 시스템으로, 한 개인의 떨림에서 한 공동체의 약속으로 — 같은 사상이 단계적으로 외화되는 궤적이다.


5. 한계와 비판적 독해

정약용을 현대 복지 사상의 원조로 무리하게 끌어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자유 조도 마찬가지다.

첫째, 『목민심서』는 목민관(지방관)을 위한 매뉴얼이다. 시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통치자이고, 어린이는 시혜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시민의 권리(right) 개념이 아니다. 정약용에게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할 객체이지, 권리를 가진 주체가 아니다. 이 비대칭은 분명히 의식해야 한다.

둘째, 자유 조의 직접적 적용 대상은 흉년의 유기아(遺棄兒) — 즉 극단적 위기 상황의 아동이다. 평시의 모든 아동에 대한 보편적 지원이 아니다. 정약용은 평시에도 관이 아동을 살펴야 한다고 봤지만, 그 강도는 위기 시와 다르다.

셋째, 신분제 사회의 텍스트라는 점이다. 양반의 자식과 천민의 자식이 동등하게 자유의 대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정약용 자신도 완전히 일관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유 조가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그 사상의 방향성 때문이다. 어린이를 가족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으로 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마음이 아닌 제도로 고정시키려 한 의지 — 이 두 가지는 200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도 유효하다.


6. 그래서, 지금

처음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급식비 미납 명단 앞에서 시선을 떨구던 아이.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다. 그 명단 자체가 없는 세상이었다.

이게 자유 조의 핵심이기도 하다. 정약용이 자유를 大政이라 부르고 令典으로 못 박으려 한 이유 — 그것은 어린이가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통치자가 인자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도와주지 않으면 정치가 정치가 아니게 되는 구조 — 그게 정약용이 본 자유의 자리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왜 부잣집 아이까지"라는 질문은, 이 관점에서 보면 질문의 자리가 잘못되어 있다. 자유 조의 논리에 따르면 — 선별은 마음의 영역이고, 보편은 제도의 영역이다. 마음으로 베풀면 받는 자에게 부끄러움이 따라붙고, 제도로 보장하면 부끄러움이 사라진다. 같은 한 그릇의 밥인데, 누가 어떤 자격으로 받느냐에 따라 그 밥의 의미가 달라진다.

정약용은 그 차이를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자유를 선왕의 큰 정사라 불렀다. 큰 정사 — 그러니까, 한 사회가 사회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지하철에서 약자를 못 알아보는 마음이 측은지심의 메마름이라면, 급식실에서 어떤 아이의 부끄러움을 방치하는 사회는 자유의 메마름이다. 그리고 그 두 메마름은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제도로 외화시키는 일에 게으른 사회.

정약용이 200년 전에 강진의 유배지에서 한 일은, 그 게으름에 대한 가장 정밀한 반박이었다.

慈幼者, 先王之大政也.

—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은, 정치의 큰 본령이다.

이 한 문장을 잊지 않는 일 —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정약용에게서 받아야 할 가장 오래된 숙제일지도 모른다.